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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무도회 (2022년 신년하례회 설교)
허임복 2023.4.29 조회 56

호세아 9:5 /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

5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북이스라엘 선지자인 호세아가 활동한 시기는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뉜 지 200여년이 훌쩍 지난 때였고 이때가 주전 8세기입니다. 30~40년 후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치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영토 팽창정책으로 나라 전체가 번영을 누리고 있었던 때라, 백성들은 심판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왕하14:25,28), 영적 불감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4:2,18;6:8-9;7:1)

 

마치 지금 우리 사회와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합종교에 익숙해져 가는 이스라엘을 되돌리고자 애쓰셨습니다. 불륜 아내를 동원하면서까지 쏟아내신 호세아서의 핵심은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3:1),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을 볼 때마다, 또 선포하려고 설교 준비를 할 때마다 선민이나 성도들의 이중적 삶이 슬퍼집니다. 왜 이런 충분한 교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종교개혁이라고 느낄만한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800년 전 가면무도회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1976년 박현숙이라는 작가가 쓴 가면무도회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통금이 있던 시대, 월남에 가고, 중동지역에 달러를 벌러 갔던 그 시대에 셀러리맨 남편이 출장 간 사이 결혼생활이 무료해진 주부가 가면무도회에 갔다가 짝꿍(파트너)을 만났는데, 가면 속 파트너가 남편이었다는 이야기를 희곡으로 쓴 작품입니다.

이런 가면무도회는 1268년부터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이 14세 때 베르사유 궁전에서 시작된 귀족과 왕족들의 놀이문화입니다. 왕족과 귀족들은 거의 매일 밤, 연극이나 오페라 등의 사교 문화를 즐겼는데 그 중 가면무도회가 백미요 압권이었습니다.

가장무도회는 축제 때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군중들의 재미였지만

가면무도회는 고도의 계산에 의한 속임이고 타락의 문화였습니다.

 

지금 이 사회는 과학과 문명과 복지와 우방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물 속 개구리 이야기 아시지요?

연금 오르면 좋고, 수만 가지 공약을 내걸면 그저 좋겠지요. 그러나 상류층 귀족이나 왕족들이 밤마다 즐기는 밤의 문화 뒤에는 수많은 민초들의 배고픔이 있고 착취당한 노동자와 꿈을 잃은 젊은이들과 대책 없이 망가져 가는 지구가 그들이 쓴 가면에 의해 가려져 있음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라는 또 하나의 가면이 지난 3년 우리를 속였습니다. 지난 3, 가난한 나라들에게 코로나는 생지옥이고 죽음의 그림자였습니다. 마스크도 없지, 진단 키트도 없지, 백신도 그들에게는 우선권이 없었습니다. 어느 나라, 몇 명 확진자, 이 이야기는 선진국들만의 뉴스였습니다. 풍요를 놓치기 싫은 가면 속 그들에게 과연 진실이 무엇입니까?

이런 가면무도회 같은 문화가 세상만이냐?

어제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이 책이 전국 대학교에 배포되었다는 설명이 뒤에 있는데... 대학 명단을 보니 총신대도 없고 광신대도 없는 겁니다. 참 교묘한 책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회, 그래서 생긴 단어가 검증입니다. “검증이란 말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이력서만으로는 믿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다가도 목사라고 소개하면 담배를 뒤로 감췄는데 지금은 나쁘게 보면 조소같은 게 얼굴에 나타나 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지금은 목사도 이제는 이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설교도 이제는 검증입니다. 슬프고 아픈 이야기지만, 가면 속 진짜를 알 때까지는 검증이라니까요? 그런 현대적 현상에 대해 저도 과하게 동의하겠습니다.

조심스러운 대목이지만,

이 설교를 묵상하면서 저는 제가 쓴 가면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회 정치를 하면서 쓴 가면은 없었는지, 가족들에게는 없었는지,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가면이라는 단어 앞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이제 2022년이 주어졌고 새로운 회기의 총회가 들어섰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최종 집합체인 총회가 아름다운 동행을 선포했습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아름다운 성도들의 공동체이니까

더구나 우리는 성직자들이니까, 이 어려운 때에 아름다운 사람들의 희망 동행을 하자. 이런 화두가 우리 앞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참 멋진 말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기도할 때 저, 세상이나 정치인들처럼, 힘 가진 강대국들처럼 나는 숨겨둔 체 가면을 쓴 이벤트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세상은 가면으로 자신들을 감춘다지만 성직자, 노회나 총회 정치인들이 가면을 쓰고 그 속에 자신을 감춘다면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거짓에 해당합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진리 안에서 함께 가자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호세아는 이렇게 심각한 북이스라엘에게도 구원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호세아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의사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호세아는 미래에 오실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면서, 과거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것처럼 다시 미래에 이들을 포로 생활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022년을 사는 여러분과 저는 여전히 하나님의 교회로서

다시 회복될 것을 희망하며 강단과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가면 벗는 일을 회개로부터 시작하자는 말을 결론의 말씀으로 드립니다.

 

모세는 /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3:5) 는 말씀을 듣고

약속의 땅을 선포했고 여호수아도 /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15)는 말씀을 듣고 가나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사야도/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20:2) 는 말씀이 임한 후

나라 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하겠느냐? 이 가슴 시린 질문 앞에서

 

오늘, 지금, 제가, 노회 구성원들이, 총회 구성원들이

신을 발에서 벗었으면 좋겠습니다.

벗을 때는, 지금까지 감춰둔 나를, 내 가면을 벗고 기도하기를 축원합니다. 이 일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인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의 사랑과 긍휼함이 지금 이곳을 올해 우리 사역 현장을 안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

 

여호와께서 저랑, 우리 노회, 그리고 총회의 주가 되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이 시대가 가면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여전히 이 세계는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적 섭리 안에 있음도 믿습니다.

이제는 호세아처럼 저희가 성직자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더욱 선포하고자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바르고 담대한 선포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고 기도하며 가면을 벗고 기도하겠습니다.

다가오는 하나님 사랑의 심판을 선포하는 성직자들로 살아갈 2022년에 하나님의 계시를 의존하기를 간절히 소망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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