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신의 인도함을 받는 삶(3) / 김홍전 목사
- 운영자 2012.4.17 조회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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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의 인도를 받는 삶(3)
- 새 언약 백성의 삶의 방식(2) - (렘 31:31-34, 겔 36:24-27, 롬 8:1-4 )
1.옛 언약 체제에서 순종하도록 관장하신 양상
같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데도 옛 언약 시대의 백성과 새 언약 시대의 백성 사이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취하신 조치에 현저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경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옛 언약 백성이 율법을 기억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관장하신 양상은 외형적인 것이었습니다. 순종에 대한 축복과 불순종에 대한 저주를 선언하고,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을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순종의 여부에 따라 가시적인 복과 저주가 임할 것을 선언하여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하게 하여 잊지 않도록 했습니다(신27:12-28장).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30:15-20)
그리고 모세가 임종을 앞두고 여호수아를 불러다 후계자로 삼고, 율법을 써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주고 매 칠년 끝 해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 모일 때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했습니다.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 가나안에 거할 동안에 그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도록 했습니다.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신31:9-13)
안식년의 초막절에 온 백성이 모인 자리에서 율법을 낭독하게 하여 율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게 한 것입니다. 초막절에 낭독하게 한 것은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있을 때에 율법을 내리신 것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정규적으로 7년에 한 번씩은 백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율법을 낭독하게 하여 기억하게 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율법 낭독의 규례를 정하였을 율법을 기억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총회 앞에서 노래를 가르쳐 율법에서 떠나지 않고 지켜 행하도록 하였습니다(31:27-32:47). 불순종에 대한 저주의 노래를 마음에 담아 두고, 또 자손 대대로 가르쳐 부르게 하여 증거와 경계를 삼고,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32:44-47)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율법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고 하셨습니다. 옷단 귀에 술을 붙이게 하여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기억하게 하고, 또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옷깃에 붙인 술을 보고서 경각심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 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15:37-40)
또 율법을 쓴 경문을 손목과 미간에 붙이고 다니게 하셨고,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곳에 율법을 써 붙이고 다니게 하셔서 율법을 가까이 하고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리새인들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차는 경문을 넓게 하고, 옷 술을 크게 하여 율법에 충실한 것처럼 외식하였습니다(마23:5).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
이렇게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는 의식을 갖게 하여 율법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였고, 저주의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 하여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도록 하였고, 안식년의 초막절 때마다 율법을 낭독하여 지키게 하였고, 옷 술과 경문을 보고서 율법을 기억하고 지키게 하시는 등의 일련의 조치는 다 외형적인 방법들입니다. 율법을 기억하고 순종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축복과 저주의 의식을 갖게도 하시고, 저주의 노래를 가르쳐 부르게도 하시고, 안식년마다 율법을 낭독하게도 하시고, 옷 술을 붙이고 다니게도 하시고, 이마와 손목에 경문을 붙이고 다니게도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옛 언약 체제하에서는 율법을 기억하고 순종하도록 관장하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외형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시사적이고 구속사적으로 아직 유아기적인 옛 언약 시대에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들의 수준에 맡는 유치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축복과 저주라는 사탕과 협박을 통해서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이고,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시청각 자료를 통해서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외형적인 여러 가지의 조치를 통해서 죄를 억제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2.옛 언약의 한계
그러나 그러한 옛 언약 체제의 외형적인 방식으로 관장해서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지 못하고, 순종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 외형적인 방식으로는 순종하게 할 수 없었을까요? 그들 안에 죄성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연약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도록 할 수는 없었습니다(롬8:2-4). 죄성이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탕과 협박만 가지고는 죄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외적인 율법의 멍에와 규제를 사용하신 옛 언약 체제로서는 어느 정도 죄를 억제할 수는 있었지만, 인간의 죄성을 이기고 순종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외형적인 율법을 통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죄성으로 인하여 옛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언약 체제가 요청되었습니다. 백성을 율법에 순종하도록 관장하는 방법을 달리하고, 순종의 시행적 성격을 달리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죄성을 이기고 순종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는 새 언약 체제로 대치하겠다고 약속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옛 언약의 실패를 벌충하기 위해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외형적인 율법의 멍에와 규제로는 인간의 죄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옛 언약의 한계성 때문에 새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8:7)
여기서 첫 언약은 창조 직후에 인류의 머리인 아담과 맺으신 창조 언약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모세를 통해 내리신 율법 언약, 즉 옛 언약을 뜻하고, 둘째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을 뜻합니다. 그런데 둘째 것, 즉 새 언약을 요구하게 된 것은 첫 언약(옛언약)이 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흠이 있다는 것입니까? 외적인 율법의 규제로는 인간의 죄성을 이기고 순종하게 하는데 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성을 이기고 순종하도록 하는데 흠이 없는 새 언약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곧 바로 흠이 없는 새 언약 체제를 내시지 않고, 흠이 있는 옛 언약 체제를 내셨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두 가지의 이유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갈3:24-25)
아직 계시사적으로나 구속사적으로 유아기적인 역사 시기에는 몽학선생과 같은 외적인 율법의 규제 아래 두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장성한 역사 시기가 되어야 장성한 자에게 적합한 신령한 방식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유아기적인 역사 시기에 적합한 방식을 사용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유아기적인 역사 시기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유아기적인 시기에 사용하던 유치한 방법을 사용하여 순종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유아기적인 역사 시기에 사용하신 옛언약의 체제는 낡아지고 쇠하여 없어져 가고, 이제 새 언약이 요청되었습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8:13)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가 진전되어 성숙해 감에 따라 옛 언약의 외적인 규제로는 인간의 죄성 때문에 순종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옛 언약 흠과 한계가 드러나서, 옛 언약과는 다른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부르짖을 때에 가서야 새 언약을 주어야 감사할 줄 알고 그 실효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귀한 줄 모르고, 전혀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줘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순종하는데 실패하여 죄성이 얼마나 강한가가 드러나고, 옛 언약의 한계와 흠이 여실히 드러나서 새로운 대책을 절실히 구하고 바랄 때까지 잠정적으로 옛 언약의 체제 아래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옛 언약이 어떻게 새 언약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 경유이고, 왜 곧 바로 흠이 없는 새 언약 체제 아래 두지 않으시고, 흠이 있는 옛언약 체제 아래 두셨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데서 참으로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봅니다.
3.새 언약 체제에서 순종하도록 관장하신 양상
이제 새 언약이 옛 언약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새 언약을 주셨는데, 새 언약 체제에서 백성들을 순종하도록 관장하신 양상이 옛 언약의 양상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고된 말씀들에서 새 언약 체제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1)율법과 성신의 역사의 내면화
먼저 이사야 선지자의 글부터 찾아 보겠습니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사32:15-19)
옛 언약의 외적인 율법의 규제로는 죄성을 어거할 수 없어서 이스라엘에는 온갖 불의와 불공평으로 가득하고 배교하였기에 이방 나라에게 짓밟혀 땅이 황폐하여 지겠지만, 그것으로 끝나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신을 부어주셔서 광야와 같이 황폐하여진 땅을 아름다운 밭이 되게 하시고 삼림이 되게 하셔서 살기에 좋은 곳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신을 부어 주셔서 죄성을 이기고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심으로 공평과 의, 화평과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얻게 하시겠다는 예고와 약속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리셨습니다. 훗날 바울 사도는 그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성신을 부어 주시는 것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조치를 예고합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1)
하나님의 신, 즉 성신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옛 언약 체제하에서 와는 달리 이제부터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신과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신과 말씀이 백성들을 떠나지 않고 항구적으로 그들 가운데 있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사야 선지자는 새 언약의 내용을 예고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새 언약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는 직접적으로 새 언약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1:31-34)
날이 이르게 되면 새 언약을 세우실 텐데, 과거에 세운 옛 언약과는 같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옛 언약은 마치 손을 잡고 인도하는 것과 같고, 남편과 아내로서의 관계를 맺었지만 그 언약을 파하고 순종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옛 언약이 파기되었으니 이제 후로 세울 새 언약은 그렇게 외적인 율법의 규제를 사용하여 손을 붙들고 인도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백성들 마음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고 순종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내면화시켜 주시겠다는 점이 옛 언약과 같지 않은 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돌비에 새겨 주시면서 이것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여 지키게 하였지만, 죄성으로 인하여 그 법을 떠나고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그 법을 마음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내재화시켜서 순종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마음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은 마음으로부터 율법을 행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복과 저주라는 규제와 멍에를 통해서 율법을 행하게 하시지 않고, 마음속으로부터 율법을 행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옛 언약은 강제적으로 위협하고 달래서 율법을 지키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라면, 이제 새 언약은 자발적으로 하고싶은 마음을 갖게 하셔서 율법을 지키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32:39-41)
다시는 파기할 수 없는 영영한 언약을 세우시는데 그들의 마음 가운데 경외하는 심정을 두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경외하는 심정이 없이는 아무리 외적으로 강하게 규제를 해도 죄성에 사로잡혀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맑은 물로 뿌려서 정결케 하고,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5,26)
옛 언약의 내용은 축복과 저주라고 하는 외형적인 율법의 멍에와 규제를 통해서 순종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지만, 이제 새 언약은 마음의 상태를 변화시켜서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부에서 율법을 통해서 강압적으로 규제해도 ‘죄성’때문에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꿔서 율법을 행하고 싶은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고는 아무리 외부에서 강압적으로 위협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을 행하고 싶은 부드럽고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외적인 규율을 가지고 통제해도 죄를 억제할 수 없습니다.
다윗에 의해서 표시된 ‘인간 심성의 외침’에 대한 응답이라 하겠습니다. 옛 언약 백성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사람들이나 새 언약 백성들을 물론하고 모든 사람의 심성의 외침이 있는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 36:25-26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과 다윗의 심성의 외침(시51:10)을 비교해 보십시요. 꼭 같지 않습니까? 또 그와 꼭 같은 말씀이 신약 성경에 있습니다. 요3:3,5에서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과도 비교해 보십시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선언하신 말씀으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 옛 언약하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천국 백성의 자격으로써 ‘거듭나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 언약을 세우러 오신 예수님께서 최초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물로 나야 한다는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맑은 물로 뿌려서 정결케 하시겠다!”는 말씀과 같지 않습니까? 그 ‘약속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소의 입구에 물두멍이 있어서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손을 씻고 들어갔습니다. 정결하게 씻고서야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옛 언약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대표로 행하는 상징적이고 예표적인 정결의식을 통해서 정결케 되는 은혜를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새 언약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성전이 따로 있고 물두멍이 따로 있어서 제사장이 대신 씻는 상징적이고 예표적인 정결의식을 통해서 씻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심령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새 영’이나 ‘새 마음’은 바울 사도의 표현으로 하면 ‘새 생명’(롬6:4)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영의 새로운 것’(롬7:6)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한 ‘새 마음’ 혹은 ‘새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성신께서 오셔서 그 속죄의 사역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셔서 죄를 씻어 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새 언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담한 자는 하나님을 섬기기에 적합한 ‘새 마음’을 받습니다. ‘새 생명’을 받습니다. 새롭게 태어납니다.
둘째는, 성신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시겠 다는 것입니다!
마음만 바꿔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새 마음속에 성신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왜 성신님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율례를 행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는 옛 언약 시대와 같이 강압적이고 외적인 규제(복과 저주)를 통해서 율법을 행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성신님을 보내셔서 상주(常住)하시면서 행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시고, ‘죄성’을 이기고 행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겔36:27)
이 두 가지의 약속에 따라서 새 언약 시대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가려면 새 마음(새 생명)을 받아서 중생해야 하고, 성신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새 생명을 받아서 성신의 인도를 받아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외치는 유대인들을 행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3:38)
(2)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성신의 역사의 보편화
이상에서는 우리는 새 언약의 특징 중의 하나가 율법과 성신의 역사를 내재화하시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율법을 마음 판에 기록하여 율법을 행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시고, 경외하는 심정을 갖게 하시고, 성신을 마음 가운데 부어주셔서 항상 역사하시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새 언약 시대에는 성신의 역사를 보편화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2:28-30)
지금까지 옛 언약 시대에는 특별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나 백성의 지도자에게만 그 특수한 일과 관련해서 성신께서 역사하셔서 도우시고, 백성들이 그들의 지도와 인도를 받게 하셨지만, 이제 만민에게 성신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자녀들이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남종이나 여종에게까지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성신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장래 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신께서 선지자들에게 임하셔서 예언하게 하셨는데, 이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다 보편적으로 선지자와 같은 직무를 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표현으로 하면 새 언약 시대에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만인이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성신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성도 모두가 보편적으로 성신의 은사를 받아 봉사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인의 벽을 넘어서 이방인에게까지 보편성이 강렬하게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4.오순절 성신 강림의 의의와 성신의 핵심적인 사역(롬8:3-4)
여기서 우리는 ‘오순절 성신 강림의 의의’를 깨닫게 됩니다. 왜 성신이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사역하셔야 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습니다. 우리는 잠시 멈춰서 왜 성신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는지 그 본의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면서, 성신께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으로 역사하시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성신께서 오시게 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롬8:3-4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1)왜 성신께서 오셔야만 했습니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3-4)
죄성으로 인하여 율법의 외적인 규제만 가지고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성으로 인하여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는 우리에게 오셔서, 행할 마음을 주시고, 행할 능력도 주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신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셔야만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성신께서 오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성신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가르칠 때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이란 복음 전파를 위한 능력이나, 혹은 신유나 예언이나 방언과 같은 특별한 종류의 일과 관련됩니다. 그러다가 보니 성신 충만을 열심히 사모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전담 교역자들이거나, 혹은 전도를 열심히 하거나, 기이한 능력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로 한정되게 마련입니다. 물론 성신의 능력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교역자가 되거나 선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거기서 그치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성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율법과 관련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동의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죄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살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을 하나님의 성신이 역사하심으로 해결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신의 역사를 생각할 때에, 늘상 비상적인 어떤 능력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성신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신께서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좇아서 살아야 합니다. 성신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성신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불가능합니다. 성신께서는 우리의 삶을 가능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위해서도 성신께서 능력을 주시지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삶을 가능케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삶은 자기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특별한 어떤 사역을 위해서만 성신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교만한 생각입니까? 우선 매일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성신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신약 시대에는 모든 성도들이 다 은사를 받아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도 신자라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성신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죄성이 있어서 나의 힘으로는 율법에 표시해 주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무슨 특별한 사역을 하기 이전에, 우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내 안에 있는 죄성 때문입니다. 그 죄성을 이기고 율법에 표시해 주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려면 성신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신을 의지해서 매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하나님께서 맡기신 무슨 특별한 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은 특별한 일을 하는데만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선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성신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성신께서 주신 은사를 발휘하며 항상 봉사하며 살기 위해서도 성신의 도우심을 늘 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2)어떻게 성신께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를 이루도록 역사하십니까?
①율법을 마음 속에 새겨 주셔서 행할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옛 언약 백성에게는 율법을 외형적으로 돌비에 새겨 주셔서 지키도록 하셨지만, 죄성으로 인하여 마음이 굳어 있어서 지킬 수 없었습니다. 이제 새 언약 백성에게는 성신께서 마음속에 계시면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서 살고픈 거룩한 ‘소원’을 주십니다.
②죄성을 이기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옛 언약 백성에게는 죄성으로 인하여 행할 능력이 없었는데, 새 언약 백성에게는 성신을 의지하여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신께서 죄성을 이기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③성신을 의지하는 우리 편에서의 반응과 유기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4)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6-17)
성신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주하시면서 도우시는 새 언약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신께서는 우리편에서 당신을 의지하는 반응과 유기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지, 우리를 로보트 처럼 부리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율법에 표시되어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려면 성신께서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좇아서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신의 능력을 의지해야지만 죄성을 이기고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서 살 수 있습니다. 성신께서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무시하고 육신의 소욕을 따르게 되면 율법의 요구를 거절하고 죄성을 드러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신의 도우심을 받아 죄성을 이기며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은혜의 시대, 새언약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옛 언약 시대 사람들과 같이 죄성에 사로잡혀 아주 육신적인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새 언약 백성의 정상적인 삶의 방식’은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새 언약 백성이라 할지라도 성신을 의지하고, 성신의 인도를 받지 않고 육신의 소욕을 좇는다면 죄성에 지배되어 아주 기형적이고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새 언약 백성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육신적인 소욕을 버리고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지 않고, 성신께서 주시는 거룩한 소원과 능력을 충실히 받아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5.새 언약 백성의 달라진 삶의 방식(롬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儀文)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롬7:6)
새 언약 백성은 더 이상 의문(儀文)의 묵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의문의 묵은 것’은 무엇입니까? 의문(儀文)이란 의식적인 글이라는 뜻인데, ‘율법의 멍에와 규제’입니다. 율법의 멍에를 매고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영의 새로운 것’이란 무엇입니까 ? ‘새 마음’, ‘새 생명’입니다. ‘부드러워진 마음’입니다.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새 언약 백성은 성신의 인도 안에서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복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하거나 저주받지 않기 위해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율법의 멍에 아래서 하는 것이요, 옛 언약 하에서 사는 것입니다. 새 언약 백성의 삶은 복이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서 율법에 표시된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 백성은 자기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신께서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좇으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삽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살지 않고, 성신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삽니다. 성신의 인도를 받아서 살아가야 율법의 멍에를 매고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신을 힘입어 영적으로 살아난 자라면, 성신을 힘입어 살아가야 합니다.
이 두 언약의 분명한 차이는 성신의 능력이 함께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는 기록된 계명에 대한 순종을 근거로 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내주 하시는 성신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성신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5:18)
성신의 인도를 받아 살아야 옛 언약의 외형적인 율법의 규제 아래서 살지 않습니다. 성신의 인도를 받아 죄성을 이기며 살아가는데 무흠한 새 언약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꾸 흠이 있는 옛 언약 시대의 방식으로 외적인 규제 아래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근본적으로 흠이 있어서 낡아지고 쇠하고 폐기처분 된 외적인 규제의 방식으로 순종하려는 옛 언약 체제를 다시 도입해서 그 아래에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죄성을 이기지 못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데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8:13)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9:17)
새 언약 교회가 성신의 인도와 도우심을 의지하지 않고, 외적인 제도나 의식이나 프로그램, 규제와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선호하고 의지한다면 신령한 행진을 할 수 없고, 신령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외적인 규제들을 자꾸 만들어서 죄성을 억제하려고 하거나, 외적인 제도와 프로그램에 의해서 신령하게 하려고 하거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이끌어 가려고 할 때에 오히려 죄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인 성신의 도우심을 간과함으로 한없이 어둡고 육신적인 교회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외적인 규제에 의해서 순종하게 하였던 옛 언약 교회의 실패의 역사에서 그러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외적인 규제와 제도와 의식과 프로그램과 같은 보조적이고 부수적인 것들을 의지하거나 과신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성신의 역사에 일의 결국을 맡기고, 기대해야 합니다. 성신께서 말씀을 쓰셔서 신령한 깨달음을 갖게 하시고, 거룩한 소원을 갖게 하시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지나친 외적인 규제와 제도들로 성신의 역사를 차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성신께서 말씀을 쓰셔서 신령한 결과를 내시기를 구해야 하고, 단지 성신께서 말씀을 쓰셔서 신령한 결과를 내시려고 할 때에 필요로 하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최소한의 건전성 규제와 제도를 사용하는 것이 신령한 행진을 위한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개역한글); 우리가 성령을 힘입어 산다면 또한 성령을 힘입어 행동해야 한다(표준신약전서)”(갈5:25)
외적인 규제와 제도만으로는 신령한 행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옛 언약 교회가 웅변적으로 나타내 주었고, 그래서 성신을 보내 주셨는데도, 새 언약 교회 역시 성신의 능력으로 살고, 행하고, 사역하는 대신에, 외적인 규제와 제도를 게속 작동시키는 정교한 기계 장치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외적인 제도와 프로그램과 조직의 힘을 의지하여 성신께서 역사하실 틈을 주지 않아 기업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성신께서 역사하셔서 내시는 결과를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다면 새언약 시대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학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역사를 하였으니····· (학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10:16-18)
“(히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히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8:8)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8: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히8: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8: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히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 하리라 하셨느니라 (히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히8: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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